ARCHIPICK · ARCHITECT
프랭크 게리의 건물은 첫인상이 꽤 세죠. 금속판이 바람에 들린 것 같기도 하고, 커다란 종이를 구겨 놓은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런데 사진을 몇 장 더 넘기고 설계 모형을 보면, 저 요란한 겉모습을 조금 다르게 보게 됩니다.
제 눈에는 모양을 떠올리는 순간보다 그 모양을 끝까지 지어내는 과정이 더 흥미롭습니다. 방과 계단을 배치하고, 공연장의 소리를 조율하고, 휘어진 면의 치수를 맞추는 일까지 버텨야 저 건물이 남으니까요. 게리를 ‘자유롭게 그린 천재’ 정도로 기억하기엔 그 뒤의 일이 너무 많습니다.
생애·수상 정보: 프리츠커상 공식 전기, 게티의 프랭크 게리 추모 자료. 게리는 2025년에 별세했습니다.
프랭크 게리는 거칠게 만든 모형에서 출발해 실제로 지을 방법을 찾아가며, 한 번 보면 잊기 어려운 건물들을 남겼습니다.
반짝이는 금속 건물에 앞서, 철망을 두른 집이 있었다
게리는 1954년 서던캘리포니아대학교를 졸업했고, 여러 사무소에서 일한 뒤 1962년 로스앤젤레스에 자기 사무소를 열었습니다. 지금 널리 알려진 은빛 곡면이 처음부터 그의 전부였던 건 아니죠. 초기 작업에는 합판, 골판 금속판, 철망처럼 공사 현장이나 동네 담장에서 볼 법한 재료가 자주 등장합니다. [프리츠커상 전기]

산타모니카의 게리 자택은 그 출발점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입니다. 1977–1978년 개조에서 기존 집을 남겨 두고 그 둘레에 새 공간을 덧댔습니다. 오래된 집과 기울어진 유리창, 거친 마감이 한눈에 들어오는데요. LACMA 자료는 이후 1991–1992년에 편안함과 사생활을 위한 추가 변경도 있었다고 설명합니다. 흔히 보는 사진 한 장을 곧바로 1978년 준공 당시 모습으로 생각하면 곤란한 이유입니다. [LACMA, 게리 자택 해설]
이 집은 깔끔한 마감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상당히 불편한 장면일 수 있습니다. 덧붙인 부분이 원래 집과 잘 섞이려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그 어색함에는 매력이 있습니다. 기존 집을 지워 새집처럼 꾸미는 대신,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바꿨는지 정직하게 드러내거든요. 다만 매일 돌아와 쉬는 집으로는 너무 부산스럽다고 느낄 만합니다. 실험적인 외관과 편안한 생활이 저절로 맞아떨어지는 건 아니니까요.
빌바오에서는 건물 자체가 도시의 얼굴이 됐다
1997년 개관한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은 게리의 이름을 떠올릴 때 가장 먼저 나오는 작품입니다. 티타늄으로 덮인 굽은 면, 석재로 마감한 부분, 유리로 열린 공간이 강변에서 서로 다른 표정을 만들죠. 미술관 공식 자료를 보면 공사는 1993년 10월부터 1997년 10월까지 진행됐습니다. [빌바오 구겐하임, 건설 과정]

외관 사진에서 좋은 부분은 금속의 주름마다 밝기가 다르다는 점입니다. 크게 보면 하나의 덩어리인데 가까이 보면 면이 계속 꺾입니다. 그래서 시선이 한곳에 멈추지 않고 옆으로 움직이게 되죠. 작은 사진으로 봐도 쉽게 기억되는 건물이라는 장점은 분명합니다. 커다란 문화시설이 도시를 알리는 역할을 맡았을 때 특히 강한 방식입니다.
그렇다고 빌바오의 변화를 ‘유명 건축가에게 미술관 하나 맡기면 된다’는 성공 공식으로 받아들이기는 어렵습니다. 눈에 띄는 건물이 생기는 일과 사람들이 그 도시를 계속 찾는 일 사이에는 교통, 전시 운영, 주변 공공공간 같은 조건이 남아 있습니다. 여기서는 건물의 주목도가 높다는 사실과 도시 전체의 성공 원인을 구분해서 보는 편이 낫습니다.
참고로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의 작품입니다. 두 건축가 모두 미술관 외관이 강렬하지만, 뉴욕의 길게 이어지는 나선형 경사로와 빌바오의 여러 덩어리를 같은 방식으로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이름이 비슷해서 헷갈리기 쉬운 두 프랭크.
디즈니 콘서트홀은 객석부터 봐야 재미있다
로스앤젤레스의 월트 디즈니 콘서트홀은 2003년에 문을 열었습니다. 바깥의 스테인리스 곡면만 보면 조각 같은 외관을 먼저 정했을 법한데요. 게티의 설계 아카이브에서는 공연장 내부를 중심에 두고 여러 모형을 비교한 과정을 볼 수 있습니다. 계단과 엘리베이터, 사무실 같은 공간도 손으로 만든 작은 덩어리로 배치하며 조정했습니다. [Getty, Sculpting Harmony]

외벽은 바깥으로 활짝 벌어지는 느낌인데, 내부 사진에서는 무대 주변으로 좌석이 모여듭니다. 이 차이가 꽤 설득력 있습니다. 외관은 멀리서도 눈에 띄지만, 객석은 연주자 쪽으로 시선을 모아 주기 때문입니다. 외관이 강한 건축가를 볼 때 내부 사진을 꼭 함께 봐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죠.

공연장에서는 음향 설계와 협업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나가타 음향의 공식 프로젝트 자료는 이 공연장의 음향 설계 참여와 객석 구성을 설명합니다. 사진만 보고 ‘소리가 좋다’고 단정할 수는 없죠. 다만 연주자와 관객의 자리, 벽과 천장을 따로 떼지 않고 다뤘다는 점은 공간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건축가 한 사람의 감각으로 모든 결과를 설명하면 이 협업이 가려집니다. [Nagata Acoustics, 프로젝트 자료]
종이 모형을 고치는 손, 치수를 확인하는 컴퓨터
게리의 모형을 보면 완성 건물의 광택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종이와 테이프가 남아 있고, 조금씩 다른 모양이 나란히 놓여 있습니다. 게티 아카이브에 나온 디즈니 콘서트홀 자료에서는 손으로 만든 모형을 반복해서 바꾸는 과정과 디지털 도구의 사용이 함께 나타납니다. 모양이 한 번에 결정됐다는 이야기는 이 자료들과 잘 맞지 않습니다. [Getty, 설계 모형 아카이브]
빌바오 미술관에는 항공우주 분야에서 사용하던 CATIA가 활용됐습니다. 복잡하게 굽은 면을 수치로 다루고 건설에 필요한 형상을 정리하는 데 쓰인 도구입니다. ‘컴퓨터가 자유로운 건물을 만들어 줬다’고 줄여 말하면 누가 모양을 고르고 무엇을 고쳤는지가 빠집니다. 손으로 만든 안을 실제 공사에 쓸 수 있는 정보로 다듬는 작업이 있었던 거죠. [빌바오 구겐하임, CATIA 활용]
저는 이 대목이 가장 오래 남습니다. 설계하다 보면 처음에 좋았던 모양이 도면을 그리는 동안 점점 평범해질 때가 있습니다. 게리의 과정이 흥미로운 건 거친 모형의 성격을 남기면서도 치수와 시공 문제를 계속 해결하려 했다는 점입니다. 물론 복잡한 형상일수록 검토할 접합부와 제작 과정도 까다로워집니다. 자유롭게 보이는 외관과 적게 드는 노력은 전혀 다른 이야기입니다.
모든 건물이 이렇게 눈에 띌 필요는 없다
게리의 작품을 좋아하면서도 망설이게 되는 부분은 있습니다. 건물이 너무 강하게 기억되면 전시나 일상적인 이용보다 건물 구경이 앞설 수 있죠. 또 복잡한 외피는 형태를 유지하고 관리하는 조건까지 함께 고민해야 합니다. 이런 질문을 ‘예술이니까 괜찮다’며 넘기는 태도에는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그렇다고 주변과 조용히 어울리는 건축만 좋은 것도 아닙니다. 공연장이나 미술관처럼 새로운 장소를 찾아가게 만드는 일이 필요한 건물에서는 게리의 과감함이 효과를 냅니다. 어느 용도의 건물에, 어느 정도까지 허용할 것인지가 취향을 가르는 지점입니다. 학교나 작은 동네 도서관까지 같은 방식으로 눈에 띄어야 하는지는 별개의 질문입니다.
게리 건축에서 가져오고 싶은 것은 은빛 곡면 자체보다, 마음에 든 모양을 쉽게 포기하지 않는 끈기입니다. 반대로 그대로 따라 하고 싶지 않은 것은 건물은 언제나 주변보다 튀어야 한다는 기대입니다. 작품 사진 뒤에 있는 모형과 평면을 함께 보면, 좋아하는 이유도 불편한 이유도 훨씬 구체적으로 말할 수 있습니다.
곡선이 강한 건축가끼리 비교하고 싶다면 자하 하디드 글을 이어 읽어도 좋습니다. 외관이 비슷하게 낯설어 보여도 바닥이 이어지는 방식과 여러 덩어리를 조합하는 방식은 차이가 큽니다. 그 차이를 찾아보는 쪽이 ‘누가 더 특이한가’를 고르는 것보다 재미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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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랭크 게리, 영상으로 이어 보기
참고 자료와 사진 출처
이 글은 실제 방문기가 아닙니다. 아래의 공식 자료와 공개된 사진·도면을 바탕으로 작성했으며, 감상과 평가에는 편집자의 주관이 담겨 있습니다. 자료 확인일: 2026년 9월 8일.
- The Pritzker Architecture Prize · Frank Gehry, 1989 — 학력, 사무소 설립, 초기 재료 실험과 수상 정보. 전기는 수상 당시 시점의 기록입니다.
- Getty · Frank Gehry 추모 자료 — 1929–2025 생몰연도 확인.
- LACMA · Frank Gehry 교육 자료 — 자택의 개조 과정, 추가 변경, 원본 축측도.
- Guggenheim Museum Bilbao · The Construction — 공사 기간과 CATIA 활용.
- Guggenheim Museum Bilbao · The Building — 외관 재료와 건축 구성.
- Getty · Sculpting Harmony — 월트 디즈니 콘서트홀 설계 과정과 도면·모형 원자료.
- Nagata Acoustics · Walt Disney Concert Hall — 공연장 개관 및 음향 설계 자료.
사진 이용 정보
- 사진: City of Toronto Archives, Fonds 200, Series 2311, File 2969, Item 89 · 원본 출처 · 저작자 표시 조건 이용 허용 · 16:9 크롭·WebP 최적화
- 사진: André Corboz / Iconoteca dell’Accademia di architettura, Università della Svizzera italiana (USI), Fondo André Corboz, 10061 · 원본 출처 · CC BY-SA 4.0 · 크기 조정·WebP 최적화 · 수정본에도 동일한 CC BY-SA 4.0 조건 적용.
- 사진: José M Blanco / Gobierno Vasco – Irekia · 원본 출처 · CC BY 3.0 ES · 크기 조정·WebP 최적화
- 사진: Petr Berka (Petrberka) · 원본 출처 · Public Domain · 크기 조정·WebP 최적화
- 사진: Codera23 · 원본 출처 · CC BY-SA 4.0 · 크기 조정·WebP 최적화 · 수정본에도 동일한 CC BY-SA 4.0 조건 적용.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