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사 밀라|물결치는 돌벽 뒤에 숨은 가우디의 공동주택 설계

ARCHIPICK · BUILDING

카사 밀라를 처음 사진으로 보면 ‘저렇게 울퉁불퉁한 집에 가구는 어떻게 놓지?’라는 생각부터 듭니다. 외벽이 굽어 있으니 안쪽 방의 모양도 궁금해지죠. 그런데 도면을 같이 보면 의외로 실용적인 면이 눈에 들어옵니다. 바닥을 받치는 기둥과 방을 나누는 칸막이를 구분해, 안쪽 배치를 바꿀 여지를 남겼거든요. 저는 돌벽의 모양보다 이 여유가 더 흥미롭습니다. 눈에 확 들어오는 외관 뒤에 오래 쓸 집에 대한 고민이 있기 때문입니다.

ARCHITECT안토니 가우디
LOCATION스페인 바르셀로나
Passeig de Gràcia 92
CONSTRUCTION1906~1912년
ORIGINAL USE밀라 부부의 집과
임대 공동주택
카사 밀라 중정 바닥에서 위를 올려다본 곡선형 벽과 여러 층의 창문 및 철제 난간
CASA MILÀ · LA PEDRERA돌벽 안쪽에 빛이 들어올 자리를 남기다
외관만 봐서는 놓치기 쉬운 안쪽 풍경. 중정을 향해서도 창이 열린다. 사진: Richard Mortel · Wikimedia Commons · CC BY 2.0 · 크롭·WebP 최적화

채석장처럼 보이는 돌벽 뒤에는 기둥 구조가 있다

카사 밀라는 페레 밀라와 로세르 세히몬 부부가 가우디에게 의뢰한 주거 건물입니다. 부부가 살 집과 임대할 주택을 함께 넣는 계획이었죠. 1906년 공사를 시작했고 1912년 가우디가 완공을 확인했습니다. ‘라 페드레라’는 카탈루냐어로 채석장이라는 뜻인데, 당시 낯선 외관을 비꼬던 이름이 지금은 정식 명칭처럼 쓰입니다. 공식 연혁 · 별명과 당시 풍자 기록

거리 쪽 석재 외벽은 건물의 각 층을 지탱하는 주된 내력벽이 아닙니다. 바닥을 받치는 기둥 구조와 구분되며, 돌벽은 금속 부재로 건물에 연결됩니다. 그래서 창문과 발코니를 배치할 때 내부 방의 벽을 그대로 따라갈 필요가 줄어듭니다. 외벽 자체의 무게까지 사라진다는 뜻은 아닙니다. 무거운 돌을 다루면서도 방 배치와 외관이 서로를 덜 구속하게 만든 겁니다. 공식 파사드·구조 설명

이 분리가 카사 밀라를 볼 때 가장 재미있는 대목입니다. 사진에서는 돌덩어리 하나를 파서 만든 집처럼 느껴지는데, 실제로는 각 부분이 맡은 일이 나뉘어 있기 때문입니다. 창문까지 모두 칸막이 위치에 맞췄다면 이 긴 물결도 훨씬 잘게 끊겼을 겁니다. 다만 굽은 돌벽이 구조적으로 가능하다는 설명과, 그 모양을 누구나 편하게 받아들인다는 평가는 다른 이야기입니다. 외관이 조금 과하다는 첫인상은 충분히 들 수 있습니다.

칸막이를 바꿀 수 있다는 말이, 아무 곳이나 방으로 만들 수 있다는 뜻은 아니다

집 안에서는 석재와 벽돌 기둥이 하중을 받아 방 사이의 벽에 덜 의존합니다. 이 방식 덕분에 내부를 나누는 선택지가 넓어졌습니다. 현재 전시실로 쓰는 주인 세대 공간은 칸막이가 걷힌 상태에서 기둥을 확인할 수 있는 곳입니다. 운영기관의 설명에서도 이 층을 통해 자유로운 평면을 살펴보도록 안내합니다. 주인 세대 층의 기둥과 평면

집을 오래 쓰는 입장에서 꽤 반가운 선택입니다. 가족 수가 달라지거나 큰 방을 작게 나누고 싶을 때, 벽 하나가 건물 전체를 받치고 있다면 손대기가 훨씬 까다롭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지금 이 문화유산의 칸막이를 마음대로 철거할 수 있다는 안내는 아닙니다. 여기서 말하는 자유는 원래 설계가 남겨 둔 구조적인 가능성입니다.

ARCHIPICK · STRUCTURE & PARTITIONS 기둥은 두고, 방을 나누는 선을 바꾼다 배치 예시 A 배치 예시 B 하중을 받는 기둥 칸막이 창·설비·피난 동선은 별도로 검토해야 합니다. 비실측 해설도 · NOT TO SCALE · 카사 밀라의 실제 평면 아님
아키픽 비실측 해설도 · NOT TO SCALE기둥과 칸막이의 역할을 설명하기 위해 새로 그린 개념도입니다. 카사 밀라의 외곽선, 기둥 위치, 실제 세대 배치를 옮긴 도면이 아닙니다.

그래도 도면의 곡선까지 모두 편리하다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직각 모서리가 적은 방에 기성 옷장이나 긴 책장을 붙이려면 빈틈이 생길 수 있습니다. 칸막이를 옮겨도 창문과 기둥은 그대로이고, 욕실이나 주방에는 배관이 필요하죠. 자유로운 평면도 창과 설비의 위치를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 그 제약을 알고 보는 편이 가우디의 시도를 더 현실적으로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카사 밀라 복원 전시 공간의 식탁과 목제 가구, 곡선 장식이 있는 유리문
복원 전시된 식당. 문과 수납장, 식탁이 방 안에 놓인 관계를 볼 수 있다. 사진 속 가구 전체가 가우디의 원작이라는 뜻은 아니다. 사진: Richard Mortel · Wikimedia Commons · CC BY 2.0 · 크롭·WebP 최적화

집 가운데를 비운 이유는 안쪽 방에도 창이 필요해서다

카사 밀라는 독립된 출입구를 둔 두 주거동이 큰 중정 두 개를 감싸는 구성입니다. 중정은 빛과 공기가 들어오는 통로이고, 아래쪽에는 지하 차고로 연결되는 경사로가 있습니다. 도로에 면한 방만 창을 갖는 건물이 되지 않도록 안쪽에도 외기에 닿는 면을 만든 셈입니다. 공식 중정·지하층 설명

평면에서 빈 곳은 아무 일도 하지 않는 면적으로 보이기 쉽습니다. 하지만 중정 주변의 창들을 보면 그 빈자리가 여러 방의 환경에 관여한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꽉 채웠다면 방 하나는 더 생겼겠지만, 그 안쪽 방이 어디서 빛을 받을지는 다시 풀어야 했을 겁니다. 면적을 덜 채우고도 집의 질을 높일 수 있다는 판단이 설득력 있습니다. 화려한 곡선보다 다른 공동주택에도 참고할 만한 부분입니다.

중정 벽의 그림과 색도 그냥 예쁜 배경으로만 보기는 어렵습니다. 공식 보존 기록을 보면 그림층의 들뜸과 균열, 습기와 염류에 대응하는 수리가 반복됩니다. 빛과 바람에 열어 둔 벽은 날씨에도 노출되니까요. 이런 장식은 처음 만드는 공사비로 끝나지 않는다는 부담도 있습니다. 집 전체를 오래 유지할 계획까지 있어야 이 풍경이 남습니다. 중정 벽화·마감 보존 기록

사진에서 가장 근사한 다락이 원래는 빨래를 하던 곳이었다

카사 밀라 다락에서 얇은 벽돌 아치가 연속해서 굽이치며 이어지는 모습
다락의 벽돌 아치를 가까이서 본 모습. 얇게 쌓인 아치가 여러 겹으로 이어진다. 사진: Mikani · Wikimedia Commons · CC BY-SA 4.0 · 크롭·WebP 최적화

다락에는 카테너리 형태의 벽돌 아치 270개가 연속으로 놓여 옥상을 받칩니다. 원래 공동 세탁·건조 공간과 수납, 승강기 설비 등을 두었던 층입니다. 아래 주거층과 바깥 사이에서 열을 완충하는 역할도 했습니다. 여름에는 창을 열어 바람을 통하게 하고 겨울에는 닫아 햇볕의 열을 가두도록 했다고 운영기관은 설명합니다. 공식 다락 구조와 원래 용도

제 눈에는 이 다락이 외벽보다 명쾌합니다. 벽돌이 어떻게 쌓이고 어디를 받치는지 사진에서 비교적 쉽게 읽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비슷한 아치가 계속 이어지는데 높이와 통로의 방향이 조금씩 달라져, 단순한 반복도 지루하지 않습니다. 벽에 장식을 더하지 않아도 구조만으로 충분히 기억에 남는 공간입니다.

더 좋은 건 세탁이나 수납처럼 뒤편으로 밀리기 쉬운 공간까지 구조와 환기를 챙겼다는 점입니다. 집을 설명할 때 거실과 침실만 보여 주면 생활의 절반쯤은 빠집니다. 빨래를 어디에 널고 뜨거운 지붕 아래를 어떻게 쓰는지까지 보면, 카사 밀라가 거대한 조각으로만 남지 않은 이유가 보입니다. 지금의 전시 풍경과 처음의 생활 용도를 겹쳐 보면 훨씬 흥미롭죠.

옥상의 얼굴 같은 굴뚝, 재미와 편안함은 따로 봐야 한다

옥상에서 투구 쓴 얼굴처럼 보이는 것들은 굴뚝입니다. 그 주변에는 계단실 출구와 환기탑이 섞여 있습니다. 운영기관의 건축 안내는 이 시설들이 각기 다른 기능을 갖고 있으며, 굴뚝은 과거 석탄 난방의 배기 시설이었다고 설명합니다. 사진 속 모든 돌출부를 굴뚝이라고 부르면 계단과 환기구의 차이를 놓치게 됩니다. 공식 옥상 시설 설명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카사 밀라 옥상에 조각처럼 솟은 황토색 굴뚝 무리
투구 쓴 얼굴을 떠올리게 하는 옥상 굴뚝 무리. 배기 시설에 눈에 띄는 모양을 부여했다. 사진: Bravodelnorte · Wikimedia Commons · CC0 · 크롭·WebP 최적화

설비를 보기 싫다고 뒤로만 숨기지 않은 선택은 매력적입니다. 지붕에 꼭 있어야 할 것들이 걸어 다니며 구경할 대상이 됐기 때문입니다. 특히 다락의 아치를 보고 옥상 사진을 보면, 위아래의 굴곡이 따로 놀지 않는다는 점이 눈에 들어옵니다. 다만 얼굴 같은 모양에 의미를 하나씩 붙이기 시작하면 건물보다 상징 이야기가 더 커지기 쉽습니다. 굴뚝이라는 실제 용도부터 기억하는 편이 좋겠습니다.

관람 장소로는 기억에 남지만, 누구에게나 편한 지붕은 아닙니다. 단차와 계단이 많은 옥상은 이동에 제약이 있는 사람에게 부담이 될 수 있습니다. 공식 접근성 안내에서도 다른 실내 공간과 옥상의 이용 조건을 구분합니다. 굽이치는 바닥의 재미를 말하면서 이런 불편을 빼면 건물을 너무 예쁘게만 소개하게 됩니다.

카사 밀라를 다시 본다면 외벽의 물결보다 방을 어디서 나누는지, 중정 쪽에 어떤 창이 있는지, 다락이 무엇을 받치는지를 먼저 볼 것 같습니다. 화려한 집을 설계하면서도 생활이 바뀔 틈을 남긴 부분이 오래 참고할 만하기 때문입니다. 원형을 보존해야 하는 지금의 조건과 별개로, 집의 구조를 처음 정할 때 어떤 여유를 남길지 생각하게 하는 건물입니다.

방문 전에는 공식 방문 정보와 접근성 안내에서 운영 시간과 이용 가능한 경로를 확인해 주세요. 이 글은 현장 방문기가 아닌 공개 사진·도면과 운영기관의 기록을 바탕으로 작성한 건축 해설입니다.

카사 밀라, 아키픽 쇼츠로 이어 보기

‘100년 전 칸막이를 바꿔 쓰던 아파트’라는 관점으로 만든 영상입니다. 본문의 비실측 해설도와 링크된 원도면을 함께 보면 기둥과 칸막이를 나눈 이유가 더 쉽게 이해됩니다.

유튜브에서 카사 밀라 쇼츠 보기 →

자료와 사진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