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XXI 미술관|자하 하디드가 로마의 길을 전시 공간으로 바꾼 이유

ARCHIPICK · BUILDING

MAXXI 미술관은 자하 하디드 특유의 곡선만 보고 지나치기 아까운 건물입니다. 옛 병영 부지에 여러 갈래의 길을 겹쳐 놓고, 그 흐름을 전시실과 다리, 계단, 빛의 방향으로 바꾼 데 있습니다.

ARCHITECT자하 하디드 아키텍츠
LOCATION이탈리아 로마
비아 귀도 레니 4/A
PUBLIC OPENING2010년 5월 30일
AREA약 27,000㎡
MAXXI 공식 자료

붉은 소화전 뒤로 가느다란 기둥과 콘크리트 캔틸레버가 이어지는 MAXXI 미술관 외부

MAXXI · ROME · 2010도시의 길을 전시 공간으로 바꾼 미술관
캔틸레버 아래의 가느다란 기둥과 유리 입면, 보행 공간이 독립된 정면보다 긴 흐름을 만든다. 사진: Elenuar58 · Wikimedia Commons · CC BY-SA 4.0 · 16:9 크롭·톤 보정

옛 병영 자리에 ‘완성된 물체’ 대신 길을 놓다

MAXXI는 로마 플라미니오 지구의 옛 카세르마 몬텔로 병영 부지에서 시작했습니다. 이탈리아 문화부는 1998년 2단계 국제설계공모를 열었고, 273개 제안 가운데 자하 하디드의 안을 선택했습니다. 1998년부터 2009년까지 이어진 프로젝트, 2010년 5월 30일 일반 공개.

이 대지는 역사적인 로마 중심부와 현대 도시가 맞닿는 곳이고, 주변 도로와 남아 있던 병영 건물의 축도 한 방향으로 정리되지 않습니다. 설계팀은 이 복잡함을 지우고 새 질서를 덮기보다 서로 다른 방향을 건물 안으로 끌어들였습니다. 벽은 길을 따라 휘고, 전시실은 갈라졌다 다시 만나며, 다리는 그 흐름을 위층에서 가로지릅니다.

제 눈에는 이 선택이 MAXXI의 외형보다 훨씬 중요합니다. 로마에 또 하나의 거대한 기념물을 세우는 대신 낮고 긴 선들을 깔아 주변 조직과 충돌을 줄였기 때문입니다. 자하 하디드의 건축을 사진 한 장의 강한 형태로만 기억하기 쉽지만, 이 건물은 오히려 도시 지도를 실내로 밀어 넣은 작업에 가깝습니다.

1998

국제설계공모

273개 제안 가운데 자하 하디드의 흐름 중심 계획안이 당선됩니다.

2003

공식 착공

3월 20일 첫 돌을 놓으며 본격적인 공사가 시작됩니다.

2010

일반 공개

5월 30일 국립 21세기 예술박물관으로 시민에게 문을 엽니다.

MAXXI 미술관 외부 광장의 긴 바닥 선과 원형 조명 사이를 걷는 한 사람
긴 배수선과 바닥 조명, 기둥의 반복은 비어 있는 광장에도 건물의 방향을 연장한다. 사진: Elenuar58 · Wikimedia Commons · CC BY-SA 4.0 · 16:9 크롭·톤 보정

곡선보다 먼저 봐야 할 것은 ‘흐름이 겹치는 장’이다

ZHA는 MAXXI를 하나의 닫힌 미술관 상자보다 도시 안에 이식된 캠퍼스이자 ‘장(field)’으로 설명했습니다. 주된 흐름은 긴 전시실이 되고, 작은 흐름은 계단과 다리, 연결 통로가 됩니다. 입구 홀에서 보이는 검은 계단은 조형물처럼 튀어 보이지만 실제 역할은 여러 높이와 방향을 한눈에 보여주는 움직이는 안내판에 가깝습니다.

제 생각에는 MAXXI에서 가장 설득력 있는 순간은 곡선 벽 자체보다 서로 다른 길이 한 장면에 겹쳐 보일 때입니다. 누군가는 계단을 오르고, 누군가는 다리를 건너며, 다른 관람객은 아래 로비를 통과합니다. 이때 벽보다 사람의 이동이 공간의 주인공으로 보입니다. 저는 이 장면이 강한 외관보다 더 설득력 있다고 봅니다. 건물이 실제 사용자의 움직임으로 계속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다만 자유롭게 흩어지는 동선이 언제나 친절한 것은 아닙니다. 솔직히 초행 관람객에게는 다음 전시실과 출구의 방향이 직관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길을 잃는 경험을 미술관의 재미로 받아들이면 괜찮지만, 짧은 시간 안에 특정 전시를 봐야 하는 사람에게는 피로가 됩니다. 흐름을 풍부하게 만든 장점과 길 찾기를 어렵게 만든 대가는 같은 설계에서 함께 생겼습니다.

273개 안1998년 국제설계공모에 제출된 제안
약 27,000㎡MAXXI 공식 자료가 밝힌 전체 규모
3개 층겹치고 갈라지는 주요 전시 동선

MAXXI 미술관 아트리움에서 교차하는 검은색 계단과 다리, 곡선형 콘크리트 벽
검은 계단과 다리는 조각적 장식이면서 동시에 관람객의 움직임을 드러내는 동선 표지다. 사진: Elenuar58 · Wikimedia Commons · CC BY-SA 4.0 · 16:9 크롭·톤 보정

평면을 보면 MAXXI가 네트워크로 보인다

MAXXI의 평면은 방을 복도 양쪽에 정렬한 일반적인 미술관과 다릅니다. 길게 뻗은 전시 띠가 모이고 갈라지며, 층이 올라갈수록 다리와 보이드가 더해집니다. 지상층에서는 도시에서 들어온 흐름이 로비와 전시실로 나뉘고, 1층과 2층에서는 서로 어긋난 갤러리가 아래 공간을 내려다보거나 가로지릅니다.

저는 이 평면을 볼 때 방의 개수보다 ‘어디서 방향이 바뀌고, 어디서 다른 흐름과 다시 만나는가’를 먼저 봅니다. 그렇게 읽으면 자하 하디드의 선이 임의로 휘어진 게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대지의 축과 관람 순서를 조절하는 장치였죠. 반대로 각 전시실을 독립적으로 운영하려는 큐레이터 입장에서는 이런 연속성이 제약이 될 수 있습니다.

아래 그림은 공식 평면을 베끼거나 축척에 맞춰 다시 그린 도면이 아닙니다. 도시에서 들어온 주 흐름, 갤러리 띠, 계단과 다리가 만드는 연결 관계만 정리한 아키픽 해설도입니다. 정확한 평면과 단면은 바로 다음의 Fondazione MAXXI 공개 자료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ARCHIPICK FLOW DIAGRAM 도시의 방향이 전시 동선으로 바뀌는 과정 도시 진입 주 갤러리 흐름 상부 갤러리 계단·다리 연결 비실측 해설도 · NOT TO SCALE · 형태와 치수는 실제 설계도와 다름

아키픽 비실측 해설도 · NOT TO SCALE도시·갤러리·연결 동선의 개념만 설명하며 실제 설계·측량 도면이 아닙니다.

콘크리트 벽이 전시실의 경계이자 길의 방향이 된다

MAXXI의 주재료는 콘크리트와 유리, 강철입니다. 길게 휘어진 현장타설 자기충전 콘크리트 벽은 구조를 지지하면서 전시실의 경계를 만들고, 검은 강철 계단과 다리는 그 사이를 가로지릅니다. 흰색 벽과 검은색 동선의 대비가 강해서 관람객은 복잡한 공간에서도 이동하는 사람의 위치를 쉽게 알아차립니다.

제게는 유려한 스케치보다 콘크리트 벽과 검은 강철 계단의 역할 구분이 이 건물을 더 분명하게 설명해 줍니다. 휘어진 콘크리트 벽은 관람 경로와 전시실의 방향을 정하고, 강철 계단과 다리는 그 사이를 연결합니다. 유리면은 내부에서 바깥 도시가 보이게 합니다. 서로 다른 재료가 역할을 분명히 나눠 가지니 복잡한 형태가 그나마 읽을 만한 질서를 얻습니다.

하지만 노출된 콘크리트의 연속면은 시공 오차와 얼룩, 보수 흔적을 숨기기 어렵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이 건물의 완성도는 곡선의 과감함보다 긴 벽의 표면과 접합부를 얼마나 끈질기게 관리했는지에서 갈립니다. 형태를 그리는 일보다 그것을 반복 가능한 거푸집과 공정으로 바꾸는 일이 훨씬 어려웠을 겁니다. 멋진 선을 실제 콘크리트로 굳힌 뒤에도 얼룩과 보수 흔적을 오래 감당해야 한다는 점은 이 건물의 분명한 부담입니다.

반사면에 겹쳐 보이는 MAXXI 미술관 내부의 빛나는 계단과 관람객 실루엣
반사면에 겹쳐진 빛의 계단과 사람의 실루엣은 고정된 구조와 움직이는 동선을 한 장면에 드러낸다. 사진: Elenuar58 · Wikimedia Commons · CC BY-SA 4.0 · 16:9 크롭·톤 보정

MAXXI의 곡선형 콘크리트 벽은 구조체이면서 전시실을 나누고 관람 방향을 이끄는 요소입니다.

지붕은 빛과 설비, 움직이는 전시 벽을 한 줄에 묶는다

MAXXI의 지붕은 단순한 천창이 아닙니다. 선형 유리면과 차양 루버, 인공조명, 공조 설비, 전시 패널을 움직이는 레일이 하나의 반복 시스템으로 결합됩니다. 자연광은 직접 쏟아지기보다 길게 필터링돼 전시실의 방향성을 강조하고, 필요할 때는 이동식 패널로 공간 구성을 바꿀 수 있습니다.

굳이 하나를 꼽자면 저는 MAXXI에서 가장 영리한 부분이 이 지붕이라고 봅니다. 아래의 평면은 자유롭게 흘러가지만 위에서는 일정한 리듬이 빛과 설비를 정리합니다. 눈에 띄는 곡선과 조용한 기술 시스템이 서로 다른 방식으로 건물을 지탱합니다.

다만 미술관은 건축을 보러 가는 장소이면서 작품을 집중해서 봐야 하는 장소입니다. 강한 벽과 계단, 천장의 리듬은 작품을 돋보이게 할 때도 있지만 반대로 건축이 전시보다 앞에 설 때도 있습니다. 제 생각에는 MAXXI의 매력과 한계가 바로 여기에서 동시에 생깁니다. 작품이 공간과 잘 맞으면 잊기 어려운 장면이 되지만, 작은 작업이나 정적인 전시는 건축의 에너지에 밀릴 수 있습니다.

곡선 천장과 선형 천창 리본이 이어지는 MAXXI 미술관 내부
곡선 천장과 천창 리본이 반복되며 자유로운 평면 위에 일정한 빛의 방향을 만든다. 사진: Elenuar58 · Wikimedia Commons · CC BY-SA 4.0 · 16:9 크롭·톤 보정

건축이 작품보다 앞에 서는 미술관은 실패일까

MAXXI는 2010년 RIBA 스털링상을 받았습니다. 심사에서 높은 평가를 받은 이유는 상징적인 외형 하나보다 도시와 내부, 전시와 이동을 연속된 공간 체계로 조직한 성취에 있습니다. 이후 MAXXI는 자하 하디드가 해체주의 드로잉에서 실험하던 선과 움직임을 실제 공공건축으로 구현한 대표작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솔직히 이 건물을 무조건 편안한 미술관이라고 보기는 어렵죠. 방향을 찾기 어렵고 벽과 다리의 존재감도 강합니다. 그 대가는 전시가 건축에 맞춰 스스로를 바꿔야 한다는 것. 그렇지만 모든 미술관이 흰 상자처럼 조용해야 한다는 전제를 흔들었다는 점은 분명합니다. MAXXI는 작품을 담는 배경과 관람객을 움직이는 도시가 한 건물 안에서 어디까지 겹칠 수 있는지 끝까지 밀어붙였습니다.

제 판단에는 이 건물의 독창성이 예쁜 곡선보다 실제 동선에 있습니다. 불편함을 감수하면서도 ‘미술관도 하나의 도시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끝까지 밀어붙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진보다 평면을 오래 보고, 평면보다 사람들의 이동 영상을 함께 볼 때 더 정확히 이해되는 건축입니다.

관람할 때 놓치지 말아야 할 다섯 가지

  1. 입구에서 여러 갈래의 길을 한 번에 보세요. 계단과 다리, 전시실 입구가 어떻게 동시에 시야에 들어오는지 살펴보면 건물의 네트워크 구조가 읽힙니다.
  2. 곡선 벽을 따라 걷되 바닥의 방향도 확인하세요. 벽의 휘어짐과 바닥 동선이 같은 곳과 어긋나는 곳에서 공간의 속도가 달라집니다.
  3. 검은 계단 위 사람을 관찰하세요. 계단은 이동 수단이면서 로비 전체에 움직임을 드러내는 무대처럼 작동합니다.
  4. 천창 아래 빛의 농도를 비교하세요. 루버와 필터를 거친 빛이 전시실마다 얼마나 다르게 조절되는지 확인해보세요.
  5. 작품과 건축 중 무엇을 먼저 보게 되는지 스스로 점검하세요. 그 순간의 우선순위가 MAXXI의 장점과 한계를 가장 솔직하게 보여줍니다.

1분으로 보는 MAXXI 미술관

도시의 길이 콘크리트 벽과 전시실, 검은 계단과 천창으로 바뀌는 흐름을 아키픽 쇼츠에서 짧게 확인해보세요.

유튜브에서 아키픽 쇼츠 보기 →

MAXXI 미술관 FAQ

MAXXI 미술관은 누가 설계했나요?

자하 하디드 아키텍츠가 설계했으며 자하 하디드와 파트릭 슈마허가 디자인을 이끌었습니다. 프로젝트 매니저는 잔루카 라카나였고, 구조 설계에는 Anthony Hunt Associates와 OK Design Group 등이 참여했습니다.

MAXXI는 언제 완공되고 개관했나요?

설계와 공사는 1998년부터 2009년까지 진행됐습니다. 공식 개관 행사는 2010년 5월 28일 열렸고, 일반 관람객에게는 2010년 5월 30일 공개됐습니다.

MAXXI라는 이름은 무슨 뜻인가요?

이탈리아어로 ‘국립 21세기 예술박물관’을 뜻하는 Museo nazionale delle arti del XXI secolo의 약칭입니다. 현대미술과 건축 컬렉션, 전시와 연구 프로그램을 함께 운영합니다.

왜 MAXXI 평면은 곡선과 갈래가 많은가요?

주변 도시와 옛 병영 부지의 여러 방향을 실내로 끌어들여 갤러리, 계단, 다리가 이어지는 네트워크를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곡선은 형태 효과이면서 관람의 진행 방향을 조절하는 장치입니다.

MAXXI 실제 평면도와 단면도는 어디서 볼 수 있나요?

본문의 ‘실제 도면 확인하기’에서 Fondazione MAXXI가 공개한 OF ARCH 112/2010 PDF로 이동할 수 있습니다. PDF 6쪽에는 지상층·1층 평면, 7쪽에는 2층 평면, 8쪽에는 갤러리와 입구 홀 단면이 수록돼 있습니다.

자료와 사진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