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티아고 칼라트라바의 건축은 멈춰 있는 사진에서도 몸을 움직이는 것처럼 보입니다. 날개를 펼치고, 허리를 비틀고, 갈비뼈 같은 선을 드러내죠. 재미있는 건 그중 일부는 정말 움직인다는 점입니다. 밀워키 미술관의 접히는 차양, 터닝 토르소의 고정된 비틀림, 오큘러스의 반복되는 뼈대를 나란히 보면 이 건축가가 말하는 ‘생명력’이 조금 구체적으로 보입니다.
Santiago Calatrava
스페인 발렌시아
취리히 ETH에서 토목공학
건축·엔지니어링 사무소 설립
그림을 그리는 손으로 구조도 공부했습니다
1951년 스페인 발렌시아에서 태어난 칼라트라바는 1974년 건축가 자격을 얻은 뒤 스위스 취리히 ETH에서 토목공학을 공부해 1979년 졸업했습니다. 1981년에는 접을 수 있는 입체 골조를 주제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같은 해 취리히에 사무소를 열었습니다. 건축과 공학을 함께 익힌 이력은 그의 작품을 읽는 데 꽤 직접적인 단서가 됩니다. 칼라트라바 사무소 공식 약력
그의 건물에서 눈에 들어오는 것은 매끈한 덩어리만이 아닙니다. 가느다란 부재가 줄지어 서고, 굵은 축을 따라 반복되는 선들이 몸통을 감쌉니다. 건물이 어떻게 서 있는지 궁금하게 만드는 모습이죠. 저는 이런 점이 좋습니다. 구조를 몰라도 기둥의 기울기와 부재 사이의 간격부터 관찰하게 되니까요.
다만 눈에 보이는 흰 부재를 모두 같은 역할의 ‘뼈대’로 읽으면 곤란합니다. 아래에서 볼 밀워키의 날개는 햇빛을 가리는 가동 차양이고, 터닝 토르소에는 건물을 지탱하는 콘크리트 중심부가 따로 있습니다. 새나 인체에 빗대는 설명은 입구로는 좋지만, 그다음에는 각 부분이 실제로 무슨 일을 하는지 살펴봐야 합니다.
밀워키 미술관의 날개는 정말로 접힙니다

2001년 완공된 미국 밀워키 미술관의 콰드라치 파빌리온에는 버크 브리즈 솔레이유(Burke Brise Soleil)라는 가동 차양이 있습니다. 유리로 덮인 윈드호버 홀 위에서 두 날개가 펴지고 접히는 장치입니다. 미술관 자료에 따르면 72개의 강철 핀으로 이루어지며, 펼쳤을 때 폭은 약 66m입니다. 여닫는 데에는 약 3분 30초가 걸리죠. 미술관의 파빌리온 10주년 자료
새의 날개처럼 보이는 데서 끝나지 않고 실제로 자세가 바뀐다는 사실이 이 작품의 매력입니다. 차양을 펴는 일상적인 동작이 미술관을 기억하게 하는 장면이 됩니다. 작은 블라인드의 움직임을 도시에서 보이는 크기까지 키웠다고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습니다.
위 사진에서는 진입 보행교의 난간이 중앙으로 모이고, 그 끝에서 차양이 좌우로 벌어집니다. 이 연결도 꽤 설득력 있습니다. 멀리서 감상하는 실루엣과 입구로 다가가는 길이 같은 축을 따라 이어지거든요. 날개만 잘라 찍은 사진보다 접근로까지 담긴 사진이 이 건물의 성격을 더 잘 보여줍니다.
그렇다고 언제나 날개를 펴는 것은 아닙니다. 미술관은 바람이 시속 약 37km 이상에 도달하면 센서가 차양을 자동으로 닫도록 한다고 안내합니다. 움직임은 날씨의 영향을 받습니다. 가동 차양 공식 운영 안내
이 작품에서 공학이 가장 또렷하게 느껴지는 순간은 날개를 펼칠 때만이 아닙니다. 바람이 강해지면 접도록 정해둔 조건에도 설계가 들어 있습니다. 움직임을 멋지게 만드는 것과 언제 멈춰야 하는지 정하는 일이 한 쌍이라는 점이 마음에 듭니다.
터닝 토르소는 회전하는 탑일까요
스웨덴 말뫼의 터닝 토르소(Turning Torso)는 2005년 문을 연 높이 190m의 건물입니다. 위로 쌓이는 아홉 개의 덩어리가 방향을 조금씩 달리하면서, 최상부와 최하부 사이에 90도의 비틀림을 만듭니다. 주거 공간과 업무 공간이 들어가는 건물입니다. 사업 주체 HSB Malmö의 건물 설명

이름 때문에 층이 천천히 돌아가는 건물을 상상하기 쉽습니다. 여기서 회전은 층을 쌓는 방향의 변화입니다. 완성된 건물이 기계 장치로 계속 몸을 트는 것은 아니죠. 시공에 참여한 PERI의 자료는 중심 콘크리트 코어와 그 주변에 쌓이는 구조를 설명합니다. 밀워키의 가동 차양과는 다른 종류의 ‘움직임’입니다. PERI의 터닝 토르소 시공 자료
사진에서 특히 재미있는 부분은 덩어리 사이의 짙은 틈입니다. 이 틈이 없다면 하나의 매끈한 나선처럼 보였을 텐데, 층층이 끊어주니 몸을 비트는 단계가 눈에 들어옵니다. 작은 창들이 반복되는 평범한 외벽 위에 방향의 변화가 겹쳐지면서 탑 전체가 움직이는 듯한 인상을 만드는 셈이죠.
반면 외관의 비틀림만으로 실내 생활까지 특별할 것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습니다. 주거 건물이라면 방의 크기, 가구를 놓는 벽, 창에서 보이는 풍경도 따로 살펴야 합니다. 강한 실루엣이 주는 즐거움과 매일 쓰는 집의 편안함은 각각 확인할 가치가 있습니다.
오큘러스의 흰 뼈대와 남겨진 공사비 질문
뉴욕 월드 트레이드 센터 교통 허브의 오큘러스(Oculus)는 2016년 공개됐습니다. PATH와 주변 교통망을 잇는 복합적인 교통시설의 일부입니다. 반복되는 흰 부재가 큰 내부 공간을 감싸고, 위쪽의 길게 난 유리 부분으로 하늘이 보입니다. 뉴욕·뉴저지 항만청 PATH 연혁

이 내부 사진에서는 흰색 자체보다 부재 사이의 어두운 틈이 더 강하게 작용합니다. 빽빽한 선들이 위쪽의 빛을 향해 이어지면서 시선을 끌어올립니다. 환승시설에서도 천장을 올려다볼 이유를 만들어준다는 점은 충분히 매력적입니다. 다만 사진 한 장의 인상으로 실제 혼잡도나 길 찾기까지 평가할 수는 없습니다.
공사비 이야기를 빼면 이 작품의 평가가 지나치게 가벼워집니다. 개장 당시 TIME은 교통 허브의 비용을 약 40억 달러로 보도하며 당초 예산의 거의 두 배에 이르렀다고 설명했습니다. 이 수치는 지상에서 보이는 오큘러스 지붕만의 가격이 아니라 교통 허브 사업에 관한 수치입니다. TIME의 2016년 개장 보도
큰 돈이 들었다는 이유로 공간의 가치를 곧바로 지울 수는 없습니다. 그렇지만 많은 사람이 쓰는 교통시설에서는 아름다운 천장만큼 예산도 엄격하게 물어야 하죠. 복잡한 사업의 비용 증가를 설계자 한 사람의 조형 취향으로 모두 설명하는 것도 성급합니다. 이 건물에는 감탄과 비용에 대한 질문을 나란히 남겨두는 편이 공정해 보입니다.
칼라트라바를 볼 때 한 번 더 살펴볼 것
세 작품을 보고 나면 ‘살아 움직이는 건축’이라는 표현에 서로 다른 의미가 들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밀워키에서는 차양 장치가 실제로 움직입니다. 말뫼에서는 쌓이는 방향이 달라지며 정지된 탑에 움직임이 생깁니다. 뉴욕에서는 반복되는 흰 선과 그 사이의 빛이 시선을 움직이죠.
칼라트라바 건축을 처음 보는 분께는 전체 실루엣을 본 뒤 부재 하나를 따라가 보기를 권하고 싶습니다. 어디에서 시작해 무엇과 연결되는지, 그 사이로 어떤 빛이 들어오는지를 보는 겁니다. 새나 척추라는 비유를 외우는 것보다 오래 남는 관찰이 될 것 같습니다.
대담한 형태가 궁금해서 찾아봤다가 센서와 콘크리트 코어, 공사비까지 생각하게 되는 건축가. 그 넓은 간격이 칼라트라바를 흥미롭게 만듭니다. 멋진 자세를 만드는 능력과 그 자세를 오래 유지할 책임을 함께 놓고 보면, 찬사 일색의 소개보다 그의 건축이 더 입체적으로 보입니다.
아키픽 쇼츠로 함께 보기
영상에는 AI로 생성된 콘텐츠라는 고지가 있으며 실제 건물과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본문은 공식 약력과 시설·시공 자료를 기준으로 작성했습니다. 영상 설명에 등장하는 ‘시공사들이 붕괴를 우려해 도면을 거부했다’는 일화는 구체적인 프로젝트와 근거가 확인되지 않아 본문의 사실 설명에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자료와 출처
- Santiago Calatrava — Biography: 출생, 건축·공학 교육, 박사학위와 사무소 설립.
- Milwaukee Art Museum — Quadracci Pavilion 10th Anniversary: 2001년 완공, 차양의 규모·부재 수·가동 시간.
- Milwaukee Art Museum — Burke Brise Soleil: 가동 차양의 역할과 바람에 따른 자동 닫힘.
- HSB Malmö — Turning Torso 보도자료(2012): 2005년 개장, 높이 190m, 아홉 개의 덩어리와 90도 비틀림. 현재 소유·매각 상태에 관한 안내로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 PERI — Turning Torso: 콘크리트 코어와 시공 방식.
- Port Authority of New York and New Jersey — PATH History: 2016년 교통 허브·오큘러스 공개.
- TIME — Look Inside the $4 Billion World Trade Center Transportation Hub: 2016년 개장 당시의 비용과 예산 논쟁.
자료 확인: 2026년 9월 28일. 사진 저작자·라이선스는 각 이미지 아래에 표시했습니다. 작품에 대한 평가와 비유는 아키픽의 해석입니다.